탈탈 터는 방식으로 피의자 기본권 침해…매일 압수수색 600건 넘어

입력 2019-04-09 15:27   수정 2019-04-09 15:48

8일 별세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막내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이후 1년간 자택, 사무실 등에 대해 18차례 압수수색을 당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경찰 등이 조 회장 주변을 탈탈 털었지만 그동안 한진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돼,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했다는 평가다. 이를 계기로 법조계에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남용’ 관행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범죄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강제조치는 필요하지만, 압수수색이 지나치게 잦고 광범위하게 이뤄져 피의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작년 日 평균 압수수색 602건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총 21만9829건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전년(18만1040건)에 비해 21%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하루 평균 602건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셈으로 우리나라는 ‘압수수색 공화국’이란 말도 나온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압수수색이 많아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2016년 연평균 압수수색 발부건수는 16만6563건에 그쳤다. 이른바 ‘적폐청산’ 명목으로 전방위적 수사가 이뤄진 영향 때문이란 분석이다. 올 1~2월 들어서만 벌써 3만5613건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범죄 관련성과 상관없이 일단 서류 등을 일체 압수하고 보는 ‘탈탈 털이’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1992년 부산고등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를 작성할 땐 압수할 물건과 수색할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무차별 압수를 막아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키기 위함이지만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구체적인 문서나 파일명을 미리 알 수 없어 다소 일반적으로 기입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장에서도 관련 혐의가 있을 법한 기록 등은 일단 챙긴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압수한 물건을 돌려줘야 하는 기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별건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가령 횡령 혐의로 압수수색을 해 확보한 기록을 검토하다가 뇌물 등 새로운 혐의를 발견하게 되면 이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는 것은 검찰의 오랜 수법이다.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을 할 시 ‘없던 죄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압수수색 방식 개선 필요

법조계에선 피의자의 피해를 최소하하기 위해 압수수색 방식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월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내용이 모호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 내용을 기재한 수사기관에 불리하게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포괄적 압수수색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다.

압수수색을 할 때 피의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받던 고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는 이른 아침 등교시간 전 어린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수수색을 당해 논란이 됐다.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면 한동안 업무가 마비되기도 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의자 망신주기나 기 죽이기 방식으로 압수수색이 활용되는 면도 있다”면서 “인권이 화두가 되는 시대인 만큼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고 털어놓았다.

2016년 사법정책연구원에서 펴낸 ‘압수수색 절차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피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컴퓨터에 입력된 정보 등 무형물을 제외하고 점유 가능한 물건만 압수 대상으로 규정하는 등 제한을 걸어놓았다. 미국 연방 수정헌법 4조에선 불합리한 압수수색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대한 규정이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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